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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 외전 – "검은 달 아래서"

by myinfo555-5 2025. 5. 14.

달빛이 산사(山寺) 지붕 위로 비스듬히 쏟아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드러나는 기왓장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숲은 마치 오래된 한숨을 내뱉는 듯 했다.

그 속을 뚫고 걸어오는 한 사내. 검은 도포 자락이 바닥을 스치고, 무거운 기척은 땅을 울렸다. 그는 바로 화산파의 잊힌 검제(劍弟), 백청명이었다. 십여 년 전, 마교와의 전쟁 속에서 사라졌던 사내.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오늘 이 산을 다시 찾았다.

“이곳이… 정말 그 화산이 맞단 말인가…”

폐허에 가까운 문파. 녹슨 검, 무너진 석등, 이끼 낀 수련장. 과거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세월과 무관심만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백청명은 허리춤에 찬 검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청명검(靑明劍)’. 화산의 정통을 이은 자에게만 전해지는 검이었다.

과거, 그가 떠날 때 분명히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땐, 화산에 다시 천하의 이름을 돌려주겠다.”

그 맹세를 품고 그는 죽음 같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숨을 고르던 밤, 피범벅이 된 채 사막을 횡단하던 날들, 그리고 수많은 강호의 절정고수들과의 생사를 건 수련 끝에 그는 마침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화산은 그가 기억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누구냐! 거기 서라!”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에 백청명의 시선이 돌아갔다. 깡마른 소년 하나가 수련복을 입고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낡은 목검. 부족한 자세.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꺾이지 않았다.

“네가 화산의 제자냐?” 백청명이 물었다.

소년은 주춤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이곳에서 수련 중인 신입 제자, 윤지명입니다. 당신은… 누구시죠?”

백청명은 잠시 망설였다가, 도포를 젖히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백청명. 과거 화산의 검제였고, 지금은 이곳을 다시 일으킬 자다.”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청명’이라는 이름은 어린 제자들에게도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문파를 위해 몸을 던졌던 마지막 검객. 단 한 번의 검술로 마교 사천왕을 베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모두 옛이야기처럼 흘러갔고, 현실 속 화산은 쇠락하고 있었다.

“정말… 그분이신가요?” 소년은 목이 메인 듯 속삭였다.

백청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아 올렸다. 달빛 아래 반짝이는 검신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허공에 검을 그었다. 허공에 새겨진 검기는 마치 용처럼 휘몰아치며 대지에 잔잔한 진동을 남겼다.

소년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무공이 아니라, ‘의지’였다.
쇠락한 문파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절대적인 의지.

“기억해라, 지명아. 검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검은 곧 사람의 뜻이고, 문파의 신념이다. 화산의 검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

그날 밤, 폐허 같은 화산파의 도장에 다시 등불이 켜졌다. 백청명은 수련장을 걸으며, 하나씩 정리해갔다. 먼지를 털고, 석등을 세우고, 금이 간 목검을 수선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아직 달이 완전히 지지 않은 하늘 아래서 백청명은 단 하나의 검술을 펼쳤다.

화산십이검.
잊혀진 검의 길.
그러나 그 길 위에 다시 피어나는 강호의 전설.

소년 윤지명은 그의 검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나도 저 검을 잇는 사람이 되겠어요…”

달 아래 울려 퍼지는 검기의 잔향 속에서, 화산은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세상이 잊은 검의 문파, 이제 다시 세상이 주목하게 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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